도백세의 음성에도 노여움이 어렸다.
" 네가 그늘진 곳의 영웅을 멸시하듯 그 영웅 또한 너같이 변변찮은
놈을 우습게 여긴다는 걸 알아라. 우리가 개산입궤(開山入櫃)할 때
엔 칼과 창으로만 하루 하루를 연명했었다. 너희같이 집이나 지키는,
고용된 위사 노릇을 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
조운기가 뭐라 항변하려고 벌떡 몸을 일으켰지만 전청문은 그의 옷
을 잡아끌며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였다.
" 오라버니, 참으세요. 한번 그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봐요. "
전청문의 말에 조운기는 얼굴을 붉히면서 도백세를 무섭게 노려보
더니 주저앉고 말았다.
도백세가 언성을 높였다.
" 나 도백세는 녹림에 은거하면서 닥치는 대로 약탈이나 하며 살아왔
소. 하지만 지금껏 남을 속이는 말은 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소. 대장
부라면 마땅히 세상 어느 것에도 당당히 말해야 할 터이니 그 무엇을
두려워 하겠소? "
묘약란은 그의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새는 것을 보고는 얼른 말머리를
돌리려고 했다.
" 도숙부, 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어요. 녹림의 영웅호걸은 결코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구요. 그러니 전숙부의 일을 계속 말씀해 주세
요. "
도백세가 조운기의 코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 잘 들었겠지. 묘대협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데 묘대협에게까지
무례하게 굴텐가? "
조운기는 흥! 하면서도 당장 말을 찾지 못하였다.
도백세는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는지 이야기를 계속했다.
" 귀농은 젊은 시절 나와 더불어 큰일을 많이 해치웠었소. 나는 줄
곧 그의 조수 노릇을 했지. 그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 후에야
그러한 일에서 손을 뺐소. 만일 그가 흑도(黑道) 인물을 우습게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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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다면 어째서 그의 무남독녀를 내 아들과 짝지워 주려 했겠소? 그
러나 그는 나와 사돈 관계를 맺는 것만으론 안심할 수가 없었소. 그
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입을 틀어막고자 어떤 사건으로 날 속이기로
결심했다오.
귀농과 범방주가 창주(滄州)에서 호일도 부부의 길을 막았던 그
날도 난 귀농의 조수 노릇을 하고 있었지. 호일도가 큰 수레 안에서
금전표(金錢표)를 날려 혈도를 적중시켰는데 그것을 맞은 사람들 중
의 하나가 바로 나였지. 또한 호부인이 지붕 위에서 비단띠를 써서
칼을 빼앗고 사람들을 공격했는데, 그 부인에게 당한 사람들 중에
이 도백세도 끼어 있었소. 묘인봉은 그 무리에게 형편없는 겁장이놈
들이라고 욕을 했는데 나 역시 그 욕을 함께 얻어먹었다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수염도 기르지 않았고 머리도 전혀 하얗게 세지 않
았을 때니 지금의 내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지.
호일도 부부가 죽는 모습 또한 나는 현장에서 지켜봤소. 묘 아가
씨와 평아사(平阿四)가 얘기한 바와 같이 보수화상의 말은 전혀 터
무니없는 얘기오. 묘 아가씨가 묻기를, 묘대협이 만일 호일도가 그
의 부친을 살해한 원수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면 어째서 여전히 그와
무예를 겨루려 했느냐고 하셨죠? 아마도여러분께서는 보수의 마음
이 간악하여 묘대협에게 이 사실을 일러주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실
것이오. "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필시 사정이 이러했으리라 짐작했
다. 그러나 보수대사가 이 자리에 있으니 누구도 먼저 그 뜻을 표하
지 못하고 있었다.
도백세가 잠자코 사람들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 아니요. 틀렸소. 생각해 보시오. 당시 일개 의원인 염기의 능력이
란 보잘것 없는 것이었소. 그런데 어떻게 그가 묘, 호 두 분을 속일
엄두를 낼 수 있었단 말이오? 그는 분명 호일도의 부탁을받고 그
세 가지 대사를 묘인봉에게 얘기해 주러 갔었소. 묘대협이 그 얘기
를 듣지 못했을 뿐이오. 염기가 그를 찾아갔을 때에 묘대협은 무슨
일이 있어 외출하고 없었소. 할 수 없이 그는 전귀농을 대신 만나
자초지종을 그에게 설명해 줬소. 당시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모든 얘기를 들을 수 있었소.
귀농이 그에게 말했었지.
' 자, 이제 모든 걸 알았으니 돌아가시오. 내가 전말을 묘대협에게
알려드릴 테니 이후 다시는 그와 이 일에 대해 거론하지 마시오. 호
일도가 묻거든, 묘대협 당사자에게 직접 전했다고말하면 되오. 그
리고 그에게 관 세 구를 사 놓으라고 하시오. 두 구는 큰 것으로,
한 구는 작은 것으로. 그래야 어른들께서 다시 돈을 쓰시지 않을테
니. '
그리고는 상으로 그에게 삼십 냥의 은자를 주었소. 염기같은 자가
코 앞에 은자가 쩔렁! 하며 떨어지는 걸 보고서야 어찌 따르지 않을
도리가 있었겠소.
묘대협이 또다시 호일도를 찾아와 무예를 겨룬 것은 전귀농이 끝
까지 그에게 이 세 가지 대사를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소. 왜
그에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여러분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이 추측할
것이오. 전귀농이 호일도에 대해 깊은 원한이 있어서 묘대협의 손을
통해 그를 죽이려 했다고.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온전한
대답은 아니오. 분명 귀농은 호일도가 목숨을 잃기를 바라기는 했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호일도의 손을 빌어 묘대협을 죽이고 싶어
했던 것도 사실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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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대협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를 모욕하며 그의 활을 부러뜨린
적이 있었소. 나는 귀농의 성질을 잘 알고 있는데, 그는 어떤 수단
을 써서라도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오. 게다가 그는 한번
품은 한을 가슴속 깊이 새겨두곤 했소. 묘대협이 그에게 심한 창피
를 주자 그는 묘대협을 증오하기 시작